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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가지고 되겠는가 현 대위는 예비역 대위

 그 날도 책상머리에 앉아서 WS 초안을 만들고, 부대안전평가 보고자료를 쓰고, 국방일보 낱말잇기를 하며 방송에서 "오전 일과 끝" 이 나오기를 잉여롭게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사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대부분 그런 날이었으니까 그 날도 그랬겠지요.

 참모처 계원 하나가 신병을 데려왔습니다. 신병 초기 간이면담은 항상 행정보급관이 했는데, 마침 자리를 비웠다고 하기로 집무실로 들이라 했습니다. 커피는 직접 타 마시라는 부대 지휘관님의 엄명도 있고 하여, 포트에 물만 떠주고 간 병사에게 고맙다고 하고서는 문을 닫았습니다. 일회용 쓰지 말라는 또한 지휘관님의 엄명이 있어 플라스틱 컵 두개를 세팅하고 물을 끓이면서 말을 붙였지요.

 이름, 입대일, 주특기, 고향 같은 것을 형식적으로 묻고 있던 도중 행정보급관이 와서 일단 커피는 다 먹인 뒤에 행정보급관에게 보냈습니다. 생활기록부는 병사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인데, 봉투에 넣어 봉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당사자의 손에 들려보낸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아연해 하면서 봉투를 개봉했지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애초 현역이어서는 안 되는 병사였습니다.

 민간병원 및 사단 의무대대, 군단 국군병원으로부터 인증받은 자기 자신의 만성 질환들. 자신 이외에는 부양자가 없는, 홀로 남겨진 아버지. 둘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현역 판정이 안 났을 텐데 무슨 일인가 싶더군요. 4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을 의무복무로 유지하려다 보니, 입대자원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종종 이렇게 실수라고밖에 할 수 없는 사례에 의해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이 병사가 징병검사를 받았던 당시에 연예인들이 같은 계열의 질병을 빙자하여 비현역 판정을 받은 것이 탄로가 나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더군요. 시기도 재수가 없었던 셈입니다.

 병무행정은 한 번 판정이 나면 그것을 뒤집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 현역복무변경 - 현역복무부적합과는 다릅니다 - 신청을 해서, 이를 뒤집어야 합니다. 자기도 질병이 있고 부친도 수년 째 와병중이고 다른 부양자가 없으니 이건 하면 백프로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그날로 인사참모처에 제반사항에 대한 문의를 넣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했듯이 병무행정 판정은 내려지기는 쉬워도 뒤집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민감한 부분이니까요. 게다가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병무청과 국군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집단입니다. 둘 다 국방부 소속인데다, 성격상 밀접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병무청과 국군이 기획재정부 하의 국세청과 관세청의 관계 뭐 이런 것보다는 서로 거리가 있습니다. 행정이 서로 유기적으로 잘 안 맞물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쨌든 실제로 그 사무 대부분은 군 내에서가 아니라 병무청이 하는 것으로 우리는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며칠 뒤에 이런 문제를 다루어주는 병무청 상담사들이 부대를 방문하니 - 참으로 마침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 그 때 상담을 받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사이 그 병사의 담당 보직을 결정하였고 따로 면담도 했습니다.

 
 병무청 상담사와의 상담 결과에 따르면, 현역복무변경 심사를 위해 필요한 서류가 열 가지가 넘었습니다.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는 물론 병사 본인의 병사용 진단서, 아버지의 병사용 진단서, 입대전 생활에 대한 진술서, 재무상황 열람 동의서, 심사원 신청서는 기본이고 추가적으로 재학증명서 - 이 병사의 경우 이미 졸업을 한 상태여서 졸업증명서 -, 자택 등기, 보험증명서, 신분증 복사본, 현역복무확인서 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판단했을 때에도 거진 다 필요한 서류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상식은 좀 깨지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여기서도 병무청과 국군이 별로 가까운 행정청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서로간 인원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에 대한 공유가 없기 때문에, 마치 문화부에서 행안부에 자료요청하듯 목록이 딸려나온다는 겁니다. 특히 현역복무확인서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더군요. 자기네들이 현역 판정 찍어서 영장 보내 입대시킨 병사가 지금 군에 있는지 여부를 서류로 다시 증명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저 서류들 중에 일부는 부대 근처의 주민센터에서 발급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서류를 다 구비하기 위해서는, 병사가 휴가를 나가야 가능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백일휴가가 없어지고 신병위로 휴가가 새로 생긴 뒤여서 상황이 좀 미묘했습니다.

 백일휴가를 대체한 것이 신병위로 휴가 - 정확하게는 신병위로 외박이 정식 명칭입니다 - 인데, 전입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야 총 4박 5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병사처럼 전입하자마자 신병위로를 보내면, 1박 2일 뭐 이렇게밖에 안 되는 것이 규정입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병사에게는 신병위로 휴가를 시행하기 전에 다른 휴가를 시행치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신병위로 휴가가 없어집니다.

 원칙대로 하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일단, 병사의 1차 정기휴가 중 5일을 끌어와서 휴가를 내보냈습니다. 병사가 자신의 사정에 따라 정기휴가 중 일부를 끌어와 사용하는 것을 청원휴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병사의 신병위로가 없어지는 것이지만, 저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병사의 신병위로 휴가를 만들어주거나 없앨 권한은 없었습니다. 다만 틀림 없이 이 병사는, 놀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병무행정이나 집안 사정으로 또 나갈 일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으므로, 3개월 뒤가 되면 신병위로를 보내주고 나중에 누가 뭐라 하면 몰라서 그랬다고 말할 작정이었습니다.


 자택도 부대와 굉장히 멀어서, 고속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8시간 이상 걸리는 고충이 있었다지만 병사는 첫 번째 휴가에서 필요한 서류 대부분을 구해 왔습니다. 상황을 부대 지휘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병무청에서 요구하는 서류의 구색을 맞추었다 싶었던 저는 그것을 병무청에 빠른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회신이 돌아오는 데에 2개월이 걸렸지요.


 그동안에도 이 병사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다행히 행정병이어서 상시 문제가 되지는 않았고, 또 스스로도 그것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 의욕적으로 군생활을 하다 보니 오히려 그것이 건강에 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군단 국군병원에서도 공인한 것이라 오해를 할만한 사람도 없었지만, 군대라는게 서로 고달픈 곳이다 보니 아프다고 하면 쌍심지부터 켜는 것도 사실 어쩔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는 군의관과 상의해서 가급적 무리가 없도록 조치하는 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대뜸 어느날, 부대 지휘관이 이 병사를 불러서 면담을 했습니다. 상태를 생각해서 큰 훈련에 한 번 안 데려갔는데, 그것이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습니다. 일개 병사에게 신경을 쓰실 만한 위치에 있는 분이 아니었건만. 면담을 하고 온 병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대답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을, 구슬려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지휘관이 그에게, 훈련 안 받을거면 그게 무슨 군인이냐. 할 마음이 없으면 없다고 해라. 나는 당장이라도 너를 부적응으로 군에서 내보내줄 수 있다. 사람의 질병이 어쩔 수 없지만 의지만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극복이 가능한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서야 되겠느냐. 네 가정상황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남아라면 누구나 다 하는 국방의 의무로 들어온 것 아니냐.


 저는 이 시점에서 굳이 왜 부대 지휘관께서 애를 불러다 그런 안하니만 못한 이야기를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울면서 상황을 이야기하는 병사는 그럼에도 이 고자질이 나로부터 다시 지휘관 귀에 들어갈까봐 지극히 방어적으로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못알아들을 정도로 제가 둔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애초 이 사실을 인사관리 보고라는 이름으로 고자질 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애초 평소 전투훈련을 받는 부대는 아니었으므로 그 이후에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2개월 뒤, 병무청은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구비서류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갖추어서 제출해 주십시오.

 저는 시쳇말로 순간 "빡이 돌았"지만, 참았습니다. 원래 행정청이라는 곳이 다 이렇지요. 줄줄이 요구하는 서류 구비해서 보내주면 뭐 잘못되었다고 퇴짜 놓는 건 이들의 공통된 속성이니까요. 저는 미비한 부분을 병사와 함께 짚어나갔습니다.

 이 와중에 병사의 그다지 가깝지 않은 친척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친이 쓰러졌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으나, 이 상황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두 번 생각 안하고 연락 받은 다음 날, 신병위로 휴가를 보내주었습니다.


 휴가 복귀 후 병사가 가져온 소식은 우울한 것이었습니다. 부친께서 간암이라는 거였지요. 돈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파고들지도 않았습니다. 사정 어려운 것 다 아는데, 현실적으로 도와줄수도 없으면서 깊게 시시콜콜 따지면 감정만 상하죠. 문제는 그게 아니라 치료과정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항암치료 및 때에 따라서는 본격적인 암치료가 필요한데, 그 때에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호자라고는 아들인 이 병사밖에 없는데,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이벤트는 거의 달마다 돌아온다는 이야기였죠. 이거,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결국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병사를 최대한 빨리 병역판정을 뒤집어서 합법적으로 내보내 줘야 한다는 결론 뿐이었습니다. 소위 의가사 제대가 속히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것은 신속히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큰 훈련이 겹치기도 했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부친이 지방 대학병원에서 손을 놓자 서울의 유명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또 거기서 진단서를 새로 발급받아와야 하니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하다 못해 제가 병원측에 전화를 걸어 사정이 이러하니 우편으로 어떻게 안 되겠는가 요청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어차피 진단서는 본인 아니면 직계존비속이 직접 방문해야 하고, 특히 병사용 진단서는 일반용과는 달라서 더욱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래저래 난관에 부딪히던 중 정기휴가를 보내고, 또 다음 정기휴가를 잘라 보내고, 다시 정기휴가를 보냈습니다. 아버지 치료와 관해서는 결국 마지막이 된 휴가는, 제가 포상 휴가를 주었습니다. 3박 4일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 본인이 열심히 한 것도 있고 다른 행정병들도 그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서울, 고향, 부대를 오고가며 아버지를 치료하고 치료비도 구해야 했던 병사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저는 이 병사의 세부적인 군생활에 대하여 일부러 위로는 가능한 대강 보고를 했습니다.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 일장 연설을 해서 병사의 마음에 상처를 낼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제 행동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지요.


 병무청에서 심사결과가 나오기 직전, 병사의 부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제 휴대전화로 걸려온 부음을 듣고 그 병사는, 통곡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동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유달리 내색하지 않았기에 기특하게 여기고 한편 가련히 여겼었는데, 목을 놓아 우는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더군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5일의 휴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병사는 장례도 다 스스로 치러야 하고, 그 이후 장지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등 5일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5일이란 사실 남이 준비한 장례식에 참여하고 올만한 시간밖에 안 되는 거지요. 당장 내보내기는 해야겠는데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지요. 군생활이 1년도 더 남았는데 3차를 보낼 수도 없고, 5일만으로는 절대로 안 될테고. 행정보급관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있던 중, 지휘관실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지휘관께서는 뜻밖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애, 5일가지고 되겠어?"

 죄지은 것도 없건만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더군요.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제가 우물쭈물하며 시원한 대답을 못하자, 지휘관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할테니 병사를 내려보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가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고를 시원찮게 해도 다 알고 있었던 거죠. 병사에 대해서. 저 질문의 워딩만을 보면 병사에게 불리한 일은 없겠다 싶었지만, 아무래도 첫 대면 때의 일도 있고 하여 불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휘관 명이니 어쩔 수 없이 병사를 내려보냈습니다.


 지휘관과 병사의 면담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병사는 저번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저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싶어 이마를 짚었습니다. 그런데 병사의 말이 뜻밖이었습니다. 울먹이면서, 지휘관이 휴가 7일을 주셨다는 겁니다.

 저는 앞뒤 따질 것도 없이 즉시 전령전에 서명하고 휴가증을 쥐어준 뒤, 행정보급관이 모는 차에 병사와 함께 타서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혼자 보내서는 무슨 일이 있겠다 싶어서가 아니라, 그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지휘관께서는 딱 두마디만 하고 휴가 7일을 준 뒤(부친상 5일과는 별개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네가 고생한 것, 다 알고 있다. 이만큼 했으면 너도, 아버지께 할 만큼 했다."


 생각보다 길지 않았던 면담에서도 말은 저것 뿐이었는데, 병사가 그 말에 안에서 눈물을 흘리느라 시간이 걸린 거였습니다. 할 만큼 했다는 말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는 겁니다.


 결국 총 12일의 휴가를 받은 병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장지도 고려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부친을 화장하고, 뒷처리를 한 다음 복귀했습니다. (저는 그 병사의 전역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먼저 전역을 했기 때문에.) 병사 복귀 직후 병무청으로부터 연달아 두 통의 통지문이 왔습니다. 첫 번째는 병사의 병역판정변경 심사가 통과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원인무효로 취소되었다는 것. 저는 병사에게는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만 하고, 통지문은 혼자 있을 때 욕을 하며 찢어버렸습니다.



 저는 여기서 부대 지휘관이 일부러 악역을 자처했다가 반전을 보여주었다든가 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분은 평소 제 성품이 유약한 것도 알고 있고, 또 병사들의 사정이 딱하면 뭐든 들어주고 마는 골치아픈 습관이 있는 것도 알고 있어서, 병사가 마냥 위에 칭얼대기만 할까봐 못된 버릇이 들지 않도록 처음에 기선을 그렇게 잡은 거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최초의 지휘관 면담 이후 느끼기로 그 병사가 군에 대해 기대하는 어떤 조치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마음으로의 배려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이것이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용인술인가도 싶더군요. 계급상으로도 사실 저로서는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높은 분이었지만, 그런 게 아니라도 역시 무슨 일이든 수십 년을 종사하다 보면 나름의 방법과 통찰이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직도 미안합니다. 더 빨리 조치를 해서 제대를 시켜주었어야 할 것을, 그래서 부친 곁에서 병수발이라도 들고, 정 안되면 임종이라도 지키게 해야 했을 것을, 제가 미련해서 내보내주지 못했나 싶어 내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더군요.


 (참으로 사정이 안 된 사례여서 아직도 세부적인 것까지 기억나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행여 개인적인 사항이라 밝혀지면 침해 소지가 있을까 싶어 개인정보가 없도록 각별히 노력했습니다.)

군인 신분에 대한 잡담들 현 대위는 예비역 대위

 "자네가 주임원사인가?"

 오래된 농담이지요.

 주임원사의 대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대대급 및 연대급 주임원사는 그 계급적 대우에 있어서는 대위, 여단급은 소령, 사단급은 중령, 군단급은 대령, 군사령부급 주임원사는 준장 대우를 받습니다. 그에 따라 가슴에 패용하는 주임원사 휘장의 색깔과 모양도 달라집니다. 그러니 군사령부 주임원사쯤 되면, 헬기 타고 나타나도 별로 이상할 것 없습니다. 물론 한 부대에 주임원사는 한 명 뿐이라, 전체 부사관으로 보면 이렇게 높은 처우를 받는 주임원사는 극소수이겠습니다만 그저 만만하게 원사로 볼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여 직책대우는 특별참모가 됩니다.

 그 부대의 수뇌부에는 반드시 주임원사가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군단본부에 포함되는 것은 군단장, 부군단장(있다면), 군단장 전속부관, 그리고 군단 주임원사로 이루어집니다. 주임원사는 부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회의에 대한 방청권이 있고, 때에 따라서는 발언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대 내에서 결정되는 거의 모든 계획에 대하여 협조 및 제청성 서명을 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절대 없겠지만 예를 들어, 여단에서 1년 여단 부대운영 계획을 세웠는데 주임원사가 무슨 일로 "나는 거기 서명 못한다" 고 하면 그 부대운영 계획은 정식 발효되지 못합니다.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절대 없겠지만요.


 갓 임관한 소위가 부대 주임원사에게 "자네가 주임원사인가?" 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전설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양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제가 봤을 때에 예전이든 그리고 지금이든, 그런 일이 있었을 가능성은, 장관급 지휘관이 정한 부대 운영계획을 주임원사가 내팽개치며 난 서명 못한다! 하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있을 수는 있지만, 사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중요한 건 그런 재미있어 보이는 현상이라기 보다,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장교와 부사관의 갈등이겠지요.


 장교와 부사관의 갈등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병사들이 복무하면서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경우에 양자의 갈등이란, 서로 속성이 다른 집단 간에 상시 있을 수 있는 일종의 양성적인 긴장감 수준에서 머무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심각한 갈등 수준으로 비화하는 건, 많은 경우 개인적인 문제가 발전한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그 갈등을 일으키는 당사자들은 굳이 장교와 부사관이라는 신분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도 갈등을 빚을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신분의 차이는 그 갈등을 표면화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뒤집어 생각하면, 신분의 차이에 의한 긴장이 없었다면 갈등이 그만큼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겪은 바로 지금은 그런 면이 크게 줄어들었거나 거의 없습니다만, 십수년 전만 해도 고참 병사들과 신임 소대장의 갈등은 유명한 것이었습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선임장교는 자신이 소대장으로 임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소대장으로 오고 보니, 병사들이 소위 기선제압을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항명하고, 다른 간부들이 없을 때에는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고, 분란거리를 만들어 곤란한 처지에 빠뜨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셨던 분은 90년대에 임관한 분이었는데, 결국 우두머리급 병사와 맞짱을 뜨고 이겨서 그 작은 하극상을 진압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군은 공식적으로 계급사회가 맞지만, 그 구조적인 면이 군의 모든 것은 아니지요. 그 부분을 제외하면 군은 일차적으로는 신분사회이고, 세부적으로 가면 군번사회라고 해야 맞습니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생각보다 장교 출신으로서 소대장 등으로 임관하였을 때의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결국 병사는 그래봐야 병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교는 장교로서 교육을 받지만, 병사들은 뭐 그런거 있느냐, 상병장 별거 없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적어도 그런 마인드를 갖고 계신 분들이 병사와 초급간부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확신합니다.


 
 신분을 막론하고, 처음 입영이든 임관이든 해서 전입온 군인은 왜 좀 멍청해 보이고, 어리버리해 보이고 그럴까요? 그건 말 그대로, 군사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군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무엇을 하면 안될지 모르기 때문에 위축되고, 꾸중이나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더욱 움츠러들기 때문에 겉보기에 어리버리해 보이는 거죠. 장교는 처음부터 종자가 달라서 그런 것이 없을 것 같나요? 천만에요. 저도 장교 출신이지만 장교도 사람이고, 똑같습니다. 처음 오면 아무것도 모르고, 겁이 나고, 무엇을 하든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사회에서도 새 집단에 처음 들어가면 그러한데, 다름아닌 군대 아닙니까?

 병사들의 복무 기간이 21개월여로 정리되었고, 과거 36개월 등에 비하면 2/3도 되지 않기 때문에 병사들의 숙련도 문제가 제기되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징병제를 하면서도 우리나라보다 복무기간이 짧은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특수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병사들의 수행임무라는 것이 그렇게 오랜 기간 숙련을 위한 준비 기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군생활이라는 건, 1년만 해 보면 다 알게 됩니다. 1년이 지났다는 것은 연 단위로 돌아가는 군의 스케줄이 한 사이클 돌았다는 거고, 그 군인은 군 내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이벤트를 거진 다 겪었다는 말과 같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죽을 상을 하고 들어오는 이등병들도, 1년이 지나 상병쯤 되면 군생활 다 한것 같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게 되죠.

 병사들이 아무리 숙련된들, 자기들 편제도 모르고 개인임무카드 하나 제대로 못 쓰는데 뭐 대단한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장교의 아집이 신분간의 벽을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간부들을 병사의 주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전투병과가 아니었습니다만, 같은 장교 출신의 친구들은 대개 전투병과가 많았으므로 이야기는 자주 들은 편이었습니다. 병사들도, 병장쯤 되면 소대장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훈련, 덧붙여 소대급 전투 지휘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못 할 것 같다구요?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병사들이 현재 군 시스템 하에서 수동적 객체인 것은 그들이 원래 그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평시에는 병사들에게, 특히 지휘권이 있는 분대장이라 해도 별다른 권한을 주지 않습니다. 권한이 없으니 책임의식도 못 느끼는 겁니다. 전쟁이 나서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소대를 이끌던 소대장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합시다. 근처에 지휘권을 인수해줄 다른 간부도 없다면, 휘하의 분대장들 중 선임분대장이 임시로 소대 지휘권을 인수받아 소대를 지휘하는거죠. 병사 소대장이라는 것, 평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전쟁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됩니다.

 (한편 인사관리 부분에서 중대장 및 행정보급관을 도와 소대원을 관리하는 등의 제반사무도 있지요. 하지만 그건 대단히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감과 적절한 성품만 있으면 됩니다. 초급간부가 병사들과 애초 자신은 종자가 다른 양, 양자가 결코 넘을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양 생각하고 말하는 것 자체도 진실이 아니거니와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병사를 얕보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군 역사에는 한국전쟁 당시 이등병으로 입대해서 마침내 사단장까지 된 분도 있습니다. 그 분의 사단장 취임식 연설을 담은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나는 이등병 출신입니다. 이등병이 소장이 되고, 분대장이 마침내 사단장이 됐습니다!" 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금같으면 꿈 같은, 팬터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죠.



 이야기가 계속 탈선하고 있는데, 어쨌든 장교와 부사관이 생각처럼 살갑게 친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제 친구가 복무중 있었던 일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소대장 시절 중대장을 모시고 전술훈련을 나갔는데, 선임소대장이 중대장의 지시를 민첩하게 수행하지 못하여 중대장의 분노를 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노한 중대장은 소대장 세 명을 따로 훈련장 뒤로 불러내어 얼차려를 주다가, 화를 이기지 못해 소대장들을 걷어찼습니다. 폭력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겠습니다만, 당시 친구를 포함한 소대장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명백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상황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중대장과 중대 행정보급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선 중대의 중대장은 행정보급관에 비해 어립니다. 당연히 군 복무기간도 짧고, 또 그 부대에 있었던 기간 자체도 짧습니다. 부사관들은 한 부대에 오래 있지만 장교들은 몇 년에 한번씩 부대를 옮기게 되니까요. 그런데 중대장의 스타일이 독선적인 면이 있어, 실제로는 행정보급관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도 잦았고 행정보급관이 정해놓은 일을 뒤엎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행정보급관은 앙심을 품었지만, 어쨌든 계급상으로든 지휘계통상으로든 중대장이 상급자이고 지휘권자이니 이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반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소대장들이 걷어차이는 것을 그 행정보급관이 본 겁니다. 훈련물자 수송을 핑계로 즉시 부대에 복귀한 행정보급관은 그 사실을 부대 주임원사에게 일러주었고, 이를 들은 주임원사는 그 사실을 부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게다가 병사들도 함께 있는 훈련장에서 장교가 구타냐며 노발대발했던 부대장은 그 즉시 이 사실을 상급부대 지휘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원래 군인에 대한 처벌권은 직속상관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차상급 상관이 갖게 되어 있지요. 예를 들어 중대장이 소대장을 징계하고자 하면 대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대대장이 중대장을 징계하고자 하면 연대장이나 여단장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상황을 확대시킬 생각이 없었던 상급부대 지휘관은 해당 중대장을 구두로 경고 - 라고 쓰고 폭풍같이 갈궜다고 읽습니다 - 한 뒤 해당 부대장에게 뒷처리를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결국 중대장은 상급부대의 다른 예하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고, 행정보급관은 부대 내 다른 중대의 행정보급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중대장의 처우는 상급부대 지휘관이, 행정보급관의 처우는 해당 부대장이 결정한 것이겠지요. 결국 그 한건의 사건으로 인하여 중대는 와해 분위기에 접어들었고, 새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이 왔으나 뒤숭숭한 분위기에다 중대 자체가 부대장에게 밉보이게 되어 내내 훈련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에 속하는 것이라 사실 별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는 군생활을 잘한 축에 속합니다.

 있는 부대가 상당히 높은 위치의 상급부대이다보니 부사관 분들도 전부 나이 많은 분들 뿐이었지요. 저로서는 깍듯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입 처음에는 젊은 여부사관들이 은근히 놀림감으로 삼는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만 잠깐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이 전부 거진 삼촌뻘 아니면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시다 보니 귀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행정보급관은 물론 처부의 부사관들도 돌아가면서 술자리를 함께 하는 등 복무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죠.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신분에 따른 위화감은 없어질 수 없었습니다만 사석에서도 예우를 잃지 않는 그들에게 제가 함부로 할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갓 들어온 소위도 부대 주임원사에게는 상급자입니다. 하지만 근속 30년 휘장을 갖고 있는 주임원사가, 갓 임관한 소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이 분이 상급자이시다, 라는 생각 보다는 아들 같은 신참이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그럼에도 대다수의 양식 있는 부사관들은 기본적인 예우를 잃지 않습니다. 그러면 경력이 일천한 젊은 장교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삼가고 조심하게 됩니다. 부대에서 마주친 주임원사의 인사를 받으면, 원래 경례는 경례로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새파란 어린 장교 입장에서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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